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 지인이 남미 여행을 갔다가 파블로 네루다가 지냈던 별장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올렸던 사진이 생각난다. 바람둥이 시인과 남미의 나라 칠레는 모두 내게 낯설다. 책을 한 권 읽고 났을 뿐인데, 저 먼 나라 칠레가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시인이 살았던 이슬라 네그라 바닷가의 동네며, 그가 드나들었던 주점과 그곳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 파블로 네루다의 시적 감성은 물론 그가 보낸 일상적인 삶과 작가로서의 삶, 심지어 칠레의 쿠데타로 이어진 정치적 역사까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네루다의 우편물을 나르던 젊은 청년 마리오도 옆집 이웃처럼 정겹다.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 준 또 한 명의 칠레 작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 소개되었다.

보통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을 쓴 소설가에 마음이 쏠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소설 속 인물인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 때문인지 소설가에 대한 관심을 쉽게 잃게 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네루다의 명성보다 스카르메타가 뒤질 건 없다. 읽고 나면 썩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뿌듯하게 밀려온다. 그 느낌 때문에 좋은 책을 찾아 읽고 또 읽기를 멈추지 않는지 모르겠다.

내가 느낀 이 책의 재미는 ‘메타포’의 매력에 있다. 시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와의 만남은 메타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은유를 뜻하는 메타포에 대해 일자무식이었던 청년 마리오가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가듯 네루다의 영향을 받아 메타포의 세계로 차츰차츰 입문해간다. 베아트리스라는 동네 주점의 여인을 사랑하면서 그의 메타포는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네루다 시인의 시를 빌려 사랑을 노래하자 여인의 마음을 얻고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청년 마리오는 메타포의 위력을 경험한다. 마리오는 후에 네루다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의 시를 적어 보내고 문학 잡지에 시를 응모하기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평범한 우편배달부는 어느새 시인이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청년 시인의 선생 역할을 한 것이다. 시인은 사랑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물에 빗대어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도와준다. 마리오는 선생에게 “당신은 모든 사물에 메타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고 묻는데, 이 질문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질문이 된다.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이 시인의 삶을 닮아 갈 때 삶에 비로소 매겨지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어 소설의 핵심과도 같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메타포가 왜 중요할까?  메타포란 곧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깨어 있는 눈이다. 즉 메타포는 시다. 메타포는 평범한 우리를 시인의 세계로 이끈다. 메타포 없이는 청년 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얻지 못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녀의 미소는 얼굴에 나비처럼 번지고, 그녀의 웃음은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며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여인의 마음은 마리오를 향해 활짝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로 메타포의 위력이다. 청년 마리오도 자신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처럼. 그런 마리오에게 시인의 시가 언어가 되어 그의 감정을 대변해 준다. 여인에게도 메타포의 위력은 강하게 작동한다. 마리오가 그녀에게 해 준 말은 그녀의 뇌리에 박혀 계속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외우게까지 한다. 메타포 두어 마디가 그녀를 사랑의 감정에 풍덩 빠지게 만든다.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우편배달부 청년 마리오를 통해 언어와 시와 메타포의 힘이 얼마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에 대해 배운다. 삶을 산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고, 우리 각자의 눈으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해 가기 위해서 시와 메타포와 언어를 도구로 삼는다. 사실 이런 것 없이도 이슬라 네루다의 고기잡이들처럼 생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메타포로 은유된 세상은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슬픈 것은 더 슬프고 처절하게, 기쁜 것은 더 기쁘고 환하게, 그렇게 인생을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한다.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지 않고, 다른 사물로 투영해 또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갈아 끼운다. 렌즈는 평범하고 하찮았던 것을 고귀하고 소중하게 만들며, 심지어 위대하게까지 변화시킨다. 한낱 여인의 미소가 형형색색의 나비로 탈바꿈해 날아가게 하듯이 말이다.

시인의 눈이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우리가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의 날을 세워주듯이, 메타포로 바라보는 세상은 좀 더 예리하고 날카롭고 섬세하며 선명해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삶에 머물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언어는 생각을 대변해 주는 우리가 가진 가장 훌륭한 연장이다. 언어가 분명하고 정확하며 또렷할 때, 우리의 생각도 정리가 되고 깨끗해지듯이, 메타포로 새 옷을 입히며 누릴 수 있는 사유의 자유로움은 우리의 생각을 1차원에 머물지 않고 2차원 이상의 세계로 풍성하게 만들며 유연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메타포로 인해 우편배달부 청년의 인생에 새로운 창이 열렸다. 소설은 우리에게 메타포를 가르치며 시인이 되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호소한다. 메타포로 자신의 언어를 찾고, 그 언어로 사랑을 성취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 보라고.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메타포로 세상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는 이유가 그 만이 가진 메타포로 칠레 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끌어 안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짧은 소설을 끝내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찾았다. 연애시로 유명하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네루다의 시를 읽어 본다. 사랑의 시어들이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소설을 읽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청년 우편 배달부 마리오가 베아트리스와의 사랑에 빠져 쓴 시처럼 읽힌다. 시인 네루다가 젊어서 쓴 시이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지금도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의 타오르는 열정에 시인의 낭만적인 구절들은 그 열정을 더 오래 더 활활 타오르게 할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하고도 남겠다.

시는 그만큼 전이적이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시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시인의 삶을 산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외쳤던 소설 속 청년 마리오의 말은 백배 맞다.